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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영화&드라마)/영화

끝없는 오역논란 영화 조커 가취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by 베터미 2019.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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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의 흥행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420만을 동원하며 이미 DC 코믹스 영화 중에 <다크나이트>의 기록을 넘었구요. 이제 <아쿠아맨>과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차례로 넘어설 차례입니다. 미국에서도 이 흔치 않은 흥행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극 특성상 월드와이드 기준으로 <다크나이트>까지 넘기기는 요원해 보입니다. <원더우먼> 정도가 최대치가 아닐까 싶은데요. 


국내에서는 또 예외없이 박지훈 번역가의 번역작품 목록에 오르면서 오역논란이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대표적인 문제되는 대사로 꼽는 문장이 바로 '내 죽음이 나의 삶보다 더 가취 있기를'이라는 대사였죠. 

영화 조커


I just hope my death makes more cents than my life


문제가 되는 이 이 문장은 원문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I just hope my death makes more sense than my life가 될 것 같습니다. 모 기사에 따르면 '내 죽음이 내 삶보다 더 의미가 있기를' 로 해석하는 문장인데요. 영화에서는 '나의 죽음이 내 삶보다 더 가취 있기를'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외국어를 우리나라 말로 옮기는 일이다 보니 오역 논란은 항상 도마에 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가취 있기를'이라는 문장을 보고 의문을 느꼈을 겁니다. 왜 뜬금없이 가취요? 부터 시작해서 영어를 힐끗 보기라도 한 사람이라면 저처럼 왜 cents를 가취로 번역했을까 하고 궁금해 하면서 보게 됐을 겁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고 무거워서 이 오역스러운 번역을 쉽게 떨쳐내긴 했지만 영화 보는 내내 찝찝하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문장이었죠. 

I just hope my death makes more cents than my life


관계자의 변


뉴스엔의 보도자료에서는 이 번역은 관계자의 말을 빌면 의도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번역을 담당한 팀에서 기본적인 번역의 가이드라인을 발음 유사성과 언어 유희적 요소를 살리면서 중의적인 해석을 담을 것이라고 전달 받아서 거기에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취'라는 국어국문학자도 알까 싶은 단어가 등장하게 된 것인데요.


이 '가취'라는 단어에 '덤'이나 '좋은 취미' 등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중의적 해석이 가능하게끔 열린 해석을 남겨 놨다는 취지였는데요. 번역을 하는 이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가는데요. 'cents'와 'sense'가 비슷한 발음이라 억지춘향 우겼다는데까지는 동의하지만 제대로 쓰이지도 않는 단어를 미국에서 흔히 쓰이는 'cents'라는 단어와 치환했다는 건 그리 동의가 안되는군요. 


큰 그림을 보자면


그래서 말입니다. 박지훈 번역가의 번역 오류를 보다 보면 일관성 있게 등장하는 오류 패턴이 있는데요. 단어나 문장이 등장하는 앞뒤 얼마 되지 않는 행간 사이에서 해석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의미에서 번역을 하고 최대한 문장을 짧게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뭐 극장에서 빨리 지나가는 자막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서 매번 헛다리 짚는듯한 번역이 나오는게 아닐까 지적하고 싶네요. 

영화 조커 오역 논란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주인공인 아서 플렉은 현실에서 되는 일도 없고 하루하루 돈을 벌어 먹고 사는게 힘든 사람입니다. 발작적인 웃음 장애를 가지고 있고 극 말미에 이르러서는 망상장애까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인물인데요. 나중에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I used to think that my life was a tragedy. But now I realize, it's a comedy'

'난 내 삶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코디미였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인데요. 이런 삶에 대한 해석은 같은 DC진영의 명작인 '왓치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오역논란에 오른 문장을 다시 보면 해석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조커 오역 박지훈


'비극같은 이해할 수 없는 내 삶을 버리더라도 내 죽음만큼은 돈이 되기를'이라는 뜻이 함축된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make sense'는 기사에서 인용한대로 '의미 있기를'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앞뒤가 맞지 않는 어떤 일이 마침내 이해가 될 때 주로 쓰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중의적으로는 내 삶 자체는 이해도 되지 않고 돈도 못 버니 내 죽음은 이해가 됐으면 좋겠고 이 와중에 푼돈이라도 벌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죽으려는 의도는 이해가 됐고 고담시의 소시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함의를 담은 문장으로 옮겨 보자면 '내 죽음은 내 삶보다 쥐꼬리만큼은 더 이해가 되기를' 정도로 '이해'에 더 무게중심을 옮긴 해석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푼돈'이라는 의미에서 '쥐꼬리'를 첨가하구요. 네. 그러합니다. 온전히 저만의 생각이에요. 이 영화의 매력은 열린 해석 아니겠습니까. 짧게 줄이려다가 참사를 일으키느니 이렇게라도 이해되는 문장으로 바꿨으면 하는 생각이었구요. 재미있게 보셨다면 구독과 공감 버튼 클릭 잊지 마시구요. 또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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