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스포가 함유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연일 화제입니다. 4일만에 관객수가 300만명을 돌파했구요. 제가 그 중에 한 명이 되었군요. 어벤져스의 세번째 작품이라 그런지 길게 쓰기 귀찮아 그런지 어벤져스3로 몰아가는 여론도 있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 전편과의 관계를 따지는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특성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소개해 드린 아재의 영화 <다이하드>같은 경우도 우리나라에는 순번으로 소개했지만 미쿡에서는 단독 타이틀을 계속 달고 나왔었죠. 최근작은 어 굿 데이 투 다이 하드 이런식으로 말장난처럼 제목을 이어와서 제목만 나열해서는 순서를 한 번에 알아채기 힘들게 해 놓았습니다.
모든 스포를 차단하기 위해 매체의 접촉을 삼가고 있었는데 불현듯 등장한 오역 논란 때문에 여기에 스포는 없겠지하고 봤더니 캐릭터 이해도 부족에서 일어난 참사였더군요. 닉 퓨리가 그렇게 노부모공경을 부르짖을 만한 인물이 아닌데 욕설을 노부모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대사로 탈바꿈시켜버려서 반발감이 더 심해진 것 같은데요. 특히나, 매번 뒤에 나올 에피소드에 대한 떡밥을 던져 주는 마블 영화의 전작들 때문에 모종의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고 한, 두 명이 보는 영화가 아닌 며칠 만에 수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보는 영화라 난데없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한 것 같습니다.
■ 그래도 청원까지는?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번역가의 역량과는 무관하게 영화에 대한 인기가 해당 자막에 대한 노출 빈도를 결정하게 되는 특성상 이렇게 거국적으로 인기가 좋은 영화는 일부 욕을 얻어 먹을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저같은 경우도 오역 논란을 이미 접하고 청와대 청원까지 들어갔다는 다소 급진적인 이야기까지 들은 상태에서 초집중하면서 영화를 봤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무너뜨릴만한 오역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구요.
다만, 긴 대사를 대충 뭉뚱그려서 짧은 한 줄로 툭툭 끊어 버리는 습관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더군요. 청원은 오히려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서 세기의 이벤트 남북정상회담 사이에서도 오롯이 관심을 받게 해주는 요소가 되어 주고 있는데요. 영화사에서 노린게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그런 면에서는 성공적입니다?
■ 계속되는 오역 논란에 대한 번역가 박지훈의 변
개인적으로 몇 번인가 번역가로 활동해 보기 위해 몇 군데 업체를 찔러 보다가 다른 사람들이 번역해 놓은 번역본의 품질을 보고 나는 그쪽에서 놀 깜냥이 안 되는구나 하고 발길을 끊었던 적이 있는데요. 똑같은 영어 문장이라도 동화책, 소설, 영화, 에세이, 전문서적 등의 다른 형태로 나온 것을 번역한다면 번역하는 톤에서부터 쓰는 한글 단어까지 다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이 분의 변은 이런 지점에서 시작되는데요. 보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번역은 없다. 어쨌든 누구라도 욕을 하게 마련이다. 작업에 할당되는 시간이 3~4일 정도밖에 없어서 매우 빠듯하다. 대본을 한 번 밖에 못 본다. 구식 워크맨으로 밖에 작업하지 못한다 등의 변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매니아 층 사이에는 변(辨)이 아니라 변(便)정도로 취급되는 변명인데요. 데드풀로 떠오르고 있는 신성 황석희 번역가와 비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데드풀 이후에 로건까지 작업했는데 작업 전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원작 코믹스 세계관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사실 번역가라면 당연히 해야할 노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요즘 등장하는 이 분들 이전에 국내 영화 번역계의 대부와도 같은 인물 이미도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정도되면 전문 번역가로서의 자질은 좀 떨어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에 대한 정성보다는 일을 쳐내기에 급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Motherfxxcker를 어머니라고 하다니요. 닉 퓨리의 전매특허 찰진 욕을 이렇게 허무하게 해석했으면 일단 뭇매를 맞는 건 당연하다 싶습니다.
■ 반대를 위한 반대는 자제해야
이렇게 이슈가 되서 의도치 않게 영화가 더 인기를 끌게 된게 아니냐는 측면에서 디즈니 코리아측의 노림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요. 과거, 그의 오역논란에 낀 대사 중에 하나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 나왔던 'On your left'인데요. '왼쪽'이라고 번역했다고 욕을 먹었는데 과하게 줄인 감은 있지만 오역으로 대차게 까일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구요.
원래는 자전거나 조깅을 하다가 앞사람을 추월하는 상황에서 지나갈테니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왼쪽으로 지나갑니다, 오른쪽으로 지나갑니다 등으로 쓰이는 표현인데요. 그냥 '왼쪽'으로 써서 그의 오역 리스트에 당당하게 올라 있습니다. 깐죽거린다는 측면에서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이번 영화에서 대차게 까이고 있는 대사 중에 하나가 'We're in the end game now'를 '이젠 가망이 없어'로 번역한 부분인데요. 체스를 잘 두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표현인데 야구로 치면 9회말 투아웃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은데요. 긍정적으로 보면 아직까지 게임은 끝나지 않았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게임의 막바지라 운이 다했다는 식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보면 어떤 방향으로 해석해도 큰 차이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전문성과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황석희 번역가같은 애정 넘치는 분이 등판하는 게 좋아 보이는군요. 영화사에서 일부러 논란을 노리는게 아니라면 말이죠. 성의가 넘치는 의역은 사랑을 받는 반면 성의없고 뜬금없는 의역은 귀신같이 알아채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번역가도 이름에 책임질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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