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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소식

글쓰기 요령 리라이팅에 있다는 '언어의 온도' 리뷰

by 베터미 2018.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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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에 온도가 있다는 발상이 재미있습니다. 집에 굴러다니던 책을 무심코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에피소드마다 깊이가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사실, 처음 봤을 때는 드라마 '사랑의 온도'나 영하 '연애의 온도'의 패러디물인가 하는 생각으로 은연중에 낮잡아 보고 읽기 시작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곱씹으며 읽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게 되더군요.

언어의 온도 리뷰


■ 글쓰기보다 대단한 관찰력


책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작가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냥 스쳐 지나치지 않고 세심하게 관찰한 후기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어깨 너머로 들은 통화 내용이 에피소드가 되고 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예기치 않았던 일상이 또 에피소드가 됩니다.


그가 일상을 대하는 장면들을 따라 가다 보면 왜 이 작가 주변에만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걸까?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습니다. 예전에 무릎팍도사에 등장했던 황석영 작가가 자신이 가는 곳에는 희한하게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며 읊었던 역사의 현장이 천안문 사태, 베를린 장벽 붕괴, LA 흑인 폭동 등에 함께했던 이야기를 한 것이 새삼 기억날 정도였는데요.

황석영 베를린 장벽


이런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한 것은 아니지만 흔히 지나치고 말 법한 일상에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뽑아 내니 말이죠. 한 구절을 인용해 봅니다.

이 꽃은, 여기 이 화단에 피어 있어서 예쁜 건지도 몰라. 주변 풍경이 없다면 꽃의 아름다움이 반감될 걸세. 그러니 꺾지 말게. 책상 위에 올려놓은 꽃은 지금 보는 꽃과 다를 거야.

일상 생활에서 이런 대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습니다. 


■ 어원에 깃든 재미


알쓸신잡3에 다시 출연하고 있는 김영하 작가는 시즌1에서 단어 수집가라는 독특한 취미를 공개한 바 있는데요.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면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재미있기도 하고 저런 것도 일종의 직업병이구나 했습니다.


'언어의 온도'에는 이런 직업병같은 전개가 꽤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보면요.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그래서일까. 진심 어린 사과에는 '널 아프게 해서 나도 아파'라는 뉘앙스가 스며 있는 듯하다.

이와 같은 식으로 어원을 들추어 에피소드를 풀어 나가는 재능이 탁월합니다. 역시, 무엇이든지 쉽게 지나치지 않고 살펴 보려는 관찰력, 호기심에서 비롯된 스킬이 아닌가 합니다.

김영하 단어수집가


■ 리라이팅은 곧 숙고


이 부분은 그의 직업 철학으로 보이는데요. 난데없이 새벽에 전화를 청한 후배에게 글쓰기의 정수를 알려 주면서 '라이팅은 리라이팅'이라고 알려 주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한글로 풀어 쓰면 '다시 쓰기'인 셈인데요. 


다시 쓰는 것은 또 다시 생각한다는 뜻이고 일필휘지 한 번에 휘갈긴 글이 아니라 여러 번 고치고 수정해서 글을 완성하는 그의 철학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 SNS가 만연한 세상에서 스피드는 곧 생명인데요. 그래서일까 숙고해 가면서 트윗을 날리거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리라이팅


리라이팅이 없어져 가는 세상에서 다시 리라이팅을 말하는 것이죠. 제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의 글도 내용만 얼추 맞춰 올리다 보면 쉽게 드러나는 오탈자에 허덕거리는게 일상인데 그런 그의 글을 읽고 있자니 이 짧은 에세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까 하는 생각에 제가 쓴 글도 다시 보게 되더군요. 


겨드랑이에 끼우고 다니면서 잠깐 서 있을 때 웹툰 보듯이 가볍게 읽고 다시 움직이는 동안 숙고해 보기에 최적인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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