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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소식

중국 관련 교재로 써도 좋을 조정래 소설 정글만리

by 베터미 2020.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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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주는 블로거 베터미입니다. 전자책을 활용한지가 오래되어 요즘은 책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감이 잘 안 오는게 장점이자 단점이 되었는데요. 조정래의 정글만리는 그래서인지 꽤 오랫동안 붙잡고 읽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다른 집 책장에 꽂혀 있는 두께를 보아하니 꽤 두껍네요. 도입부를 견디는게 조금 힘겹긴 한데 1권 중반을 넘어서면 꽤 술술 읽히는 책입니다.

 

 

■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가장 최근에 나온 <천년의 질문>은 아직 읽어 보지 못했지만 이전 작품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을 보고 난 뒤 작가 조정래의 굉장한 팬이었는데요. 그의 소설의 최고 장점을 꼽으라면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독자를 시대 한가운데 몰아 넣는 세세한 시대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태백산맥은 여순반란사건이 종결된 직후부터 1948년 빨치산 부대가 율어지역을 해방구로 장악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구요. 아리랑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김제 출신 인물들이 군산, 하와이, 동경, 만주 등지로 옮겨가면서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한강은 이 세 작품 중에서는 가장 최근인 1959년 이후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적으로 정리를 하는 이유는 정글만리의 배경은 이런 시대를 훌쩍 뛰어 넘어 21세기 중국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한계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가려고 하는데요. 대사톤이 21세기에 안 어울리게 너무 진부합니다. 초반 진도를 더디게 하는 진입장벽인데요. 시점을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시절로 돌리면 꽤 잘 어울립니다. 예를 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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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오. 중국이 이렇게 엄청난 기세로 큰 고객이 될 줄은 몰랐소. 그런데 당신의 판단이 맞아가고 있소. 일본 손님은 10명 중에 2명이 물건을 사고, 한국 손님은 10명 중에 5명이 물건을 사고, 중국 손님은 10명 중에 9명은 물건을 산다고 했는데, 그 말은 빗나갔소.

이렇게 21세기에는 거의 쓰지 않을 것 같은 말투가 전체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현실감을 흐리고 진부해 보이게 합니다. 앞선 세 작품에서 느껴졌던 현실감이 아쉬운 이유입니다. 

 

■ 소설인가 백과사전인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자료를 수집했는가를 책 전체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 관련 교재로 써도 좋을 것 같다는 발상이 여기에서 나왔는데요. 이를테면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는 문장이나 마오쩌둥의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는 건 여자다'나 '중국에서는 줄을 서면 시간이 갈수록 차례가 뒤로 밀린다라는 말이 있다' 등 수도 없이 많은 중국 관련 주옥같은 팁과 문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중국에 주재원으로 파견된다고 하면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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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보다 10배 부자면 헐뜯고, 자기보다 100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1,000배 부자면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10,000배 부자면 노예가 된다

정치가는 야심이 있어야 하고, 상인은 양심이 없어야 한다

이런 문장들은 작가가 직접 머리를 짜내 만든건지 중국에서 얻은 정보를 풀어낸 건지 모르겠지만 스토리 전개보다 더 눈길이 가는 대목들입니다. 

 

■ 정글만리보다는 정글군상

정글에서 바글거리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의미에서 정글만리보다는 정글군상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에 만연한 꽌시, 몐쯔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울리며 돈이라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인간 군상을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재미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종합 상사의 중국 주재원 전대광이 주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축이 되는데요. 이 전대광이 역대급 중국 백과사전입니다. 모르는게 없어요. 전대광에게 한 수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보면 3권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에피소드가 전환될 때 너무 많은 정보를 건너 뛴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는데요. 심지어 결말마저도 세상 이렇게 열린 결말이 없습니다. 

 

읽고 나면 소설에서 다뤘던 중국에 대한 설정이나 정보들이 거의 대부분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는 가정하에 중국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풍부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작중에서 다뤘던 설정이 단순히 설정뿐인 허구였다면 중국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기에 딱 좋은 책이구요. 개인적으로 중국인을 대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절반 이상 사실에 근거한 것 같다에 한 표 던집니다. 모든 걸 떠나서 조정래가 조정래했다 싶은 책이라 그의 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강력하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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