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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영화&드라마)/드라마

여우와 신포도 우화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

by 베터미 201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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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둘러 보다가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드라마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라는 드라마였는데요. 주로 SF나 스릴러물 위주로만 섭렵하던 중에 누가 보면 낯뜨거울 것 같은 제목의 드라마라 지나쳤다가 예고편을 보고 정주행해버렸네요. 정주행이 끝나고 보니 예고편이 전체 에피소드를 잘 편집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목만 보고 야하게만 볼 건 아닌 드라마입니다. 그래도 제목에 낚인게 51% 이상이라고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잘 모르는 배우라 더 좋았던


여주인공 쿠미코를 연기한 이시바시 나츠미는 <좀비가 왔으니까 인생을 되돌아보고>를 통해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은데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저는 처음 본 셈입니다. 얼굴이 묘하게 한국에서도 흔히 볼 법한 인상으로 생겼는데요. 얼굴에 소심함, 수수함, 소탈함 등이 기본 탑재되어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엄마의 학대 아닌 학대에 시달리면서 평범하지 않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주인공 쿠미코를 본인인 것처럼 잘 연기해 냅니다.


반면 남자 주인공인 켄이치를 연기한 나카무라 아오이는 굉장히 익숙한 얼굴인데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극 초반부터 대담하고 난데없고 뜬금없이 다정한 쿠미코의 대학 선배 역할로 등장하는데요. 그 역시 한없이 다정한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성매매 업소 쿠폰에 도장을 정기적으로 찍어 오는 것을 보란듯이 옷장 서랍 속에 넣어 놓는 뒤틀린 심지를 보이는 켄이치 역할을 잘 소화해서 극에 잘 녹아 납니다. 


섹스리스 부부 입밖에 내지 않아도 있을 것 같은 현실


일본 작품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상실'에 관한 이야기가 이 곳에도 등장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주로 쓰는 소재여서 익숙했던 것도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켄이치는 아내와의 육체적인 결합능력이 상실되어 있습니다. 쿠미코는 불우했던 유년시절과 학교생활로 인해서 위축되어 있는 상태에서 시골마을을 도망치듯이 빠져 나왔지만 대학생활의 시작부터 사귀게 된 켄이치와의 관계에서도 성관계는 상실된 채로 결혼까지 이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상실은 물리적으로는 해소되지 않지만 다른 형태로 해결점을 찾아냅니다. 그 해결점이 공감할만한 것인지는 관객의 몫이겠지요. 


여우와 신포도의 우화 자기합리화일까 정신승리일까


한없이 높은 현실의 벽에서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가 있습니다. 자기합리화, 정신승리, 행복회로 등인데요. 노력을 해도 해결이 안될 것 같은 상황이나 혹은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일말의 행복이나 가능성에 스스로 만족하려는 소소한 시도를 일컬어서 정신승리, 행복회로 등으로 표현하는것 같습니다. 이 단어는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에서 쿠미코가 반복적으로 되뇌이는 신포도라는 우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신포도 우화는 여우가 길을 지나다가 나무 높은 곳에 달려 있는 포도를 먹고 싶어서 여러 번 시도하다가 도저히 못 먹게 되자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하고 자기합리화 혹은 정신승리하는 이야기인데요. 시도해도 되지 않는 부부관계에 있어서 이와 같은 우화로 자기합리화하는 한편으로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어에는 없다는 이 신포도라는 단어를 통해 남편과 자기는 없는 일을 해내고 있다는 식으로 행복회로를 돌리면서 살아 갑니다.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반복되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이들 사이의 갈등은 아이를 놓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부부의 부모와의 제2회 상견례회장에서 폭발하는데요. 각각 딸과 아들에게는 안되면 잡아 먹을듯이 으르렁거렸던 양부모가 상견자리에서는 한없이 예의를 차리고 쑥스러워하면서 서로의 면을 세워 주려는 모습을 극단적으로 대조시켜 보여주고 결국에는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잘잘못의 탓을 서로에게 돌리려는 모습이 클라이맥스로는 제격이었습니다. 이 절정을 해소시켜 주는 대사가 바로 제목과 다름 없는 내용이었는데요. 근래 보기 드문 깔끔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외적으로는 교권이 상실되고 있는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과 내적으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부부관계로 인해 깊어지는 고민과 갈등을 잘 버무린 작품입니다. 원작이 있어 더 그런게 아닐까 싶은데요. 오래간만에 생각할 꺼리를 던져 주는 드라마였네요. 결론을 내보자면 부부 사이에 대화를 잘하고 살자가 되겠네요. 추천합니다. 19세 이상에게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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