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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소식

소설같은 에세이 영초언니 - 영초언니라 쓰고 서명숙이라 읽는다

by 베터미 2017.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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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경고 - 내용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tbs교통방송에서 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정기적으로 듣지 않았으면 꿈에도 몰랐을 책 영초언니입니다. 국정농단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제 팟캐스트에 지대넓얕이 메인이었는데 요즘은 뉴스공장이 쌍두마차 수준일 정도로 즐겨 듣는데요. 공장장이 휴가 간 사이에 임시로 자리를 메우고 있던 악마 변호사가 제주올레 시민단체 이사장이라는 분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누구신가 하고 지나갈뻔 했는데 마침 통신상에 이유로 방송이 흐지부지되고 공장장이 복귀하고 나서 서명숙 이사장이 직접 방송에 나와서 얘기하는 걸 듣고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죠. 


방송에서도 힘을 줘서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라고 정정을 했지만 에세이라기보다는 역사소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쉽게 믿기 힘든 과거사를 담담하게 영초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서 쓴 책입니다. 저자인 서명숙의 위키피디아 소개를 보면요. 경력이 1983년에 기자로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요. 이 경력이 시작되기 전 어두운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을 봤을 때 분명히 현재와는 괴리가 있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몰입이 되게 잘 썼다는 인상을 받았었는데요. 이 책도 비슷한 맥락에서 느껴졌습니다. 책을 볼 때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는 마냥 끝을 알 수 없는 답답함을 이겨내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특히, 리디북스 tts로 들은 2번째 책이 됐는데 아무 감정없이 읽고 있는 '수진'씨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묻어나오게끔 하는 절절한 글이었습니다.


읽다 보니 시대 배경이 달라서 모를 내용이나 은어도 꽤 있더군요. 이를테면, 긴조사범이라는 얘기를 심심찮게 하는데 긴조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이 일본어같아서 무슨 뜻인가 찾아봤는데 일본어도 아니고 웬 가수가 나와서 그럴리가 없는데하고 더 찾아 봤더니 긴급조치를 줄인 말이더군요. 긴조사범은 이 긴급조치를 위반한 혐의로 체포된 사람들을 일컬어 긴조사범이라고 했던 것이구요. 긴


급조치는 유신헌법에 규정되어 있던 헌법의 효력을 지니는 긴급조치를 뜻하는 것으로 9호까지 선포되어 책 내용과 관련된 긴급조치는 9호가 되겠습니다. 이 긴급조치 9호는 75년 5월 유신헌법의 부정·반대·왜곡·비방·개정 및 폐기의 주장이나 청원·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한다는 내용으로 선포되었구요. 지금 봐서는 말도 안 되는 이 긴급조치로 인해서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이나 가담했던 인물들을 영장 없이 체포한 것입니다. 여기에 휘말렸던 인물 중에 한 사람이 영초언니와 화자 서명숙인 것입니다.


이 책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해석을 할만할 꺼리를 제공해 주는데요.


첫째로는 이른바 신여성의 변화된 역할에 대해서 묘사를 잘 하고 있습니다. 시위, 저항하면 자연스럽게 남자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실제, 당시의 시위를 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도 옥바라지 역할에 국한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다고 하구요. 개화기 시절의 신여성이 아니라 군사독재 시절의 신여성이 어떻게 성역할의 변화를 겪는지 잘 보여 줍니다. 저항의 상징과도 같은 담배하며 시위 선두에서 구호를 외치고 감옥에 끌려 가는 것이 남녀 구분없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둘째로는 박정희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간극을 메우는 메아리가 있습니다. 그 시절에 영초언니가 재판장 앞에서 '독재정권 물러가라, 민주주의 쟁취하자'고 외친 행위와 최근에 와서 최순실이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부분이 어찌나 대구가 맞는지 기가 막힌 일입니다. 수미쌍관을 일부러 만든 것 같은 기분도 들구요. 서명숙 이사장도 책을 써 놓고 작가 조정래의 만류때문에 출판을 않고 있다가 이 부분에 울컥해서 출판을 결심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셋째로는 역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독재정권의 한 가운데서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투옥당하고 고문당했던 일들을 개인의 입장에서 잘 묘사하고 있는데요. 비록, 화자인 이사장은 가족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폭풍에 휘말리고 말았고 이유를 막론하고 그녀와 그녀가 함께 했던 많은 선구자들의 이런 노력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금석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현재, 병중에서 화자에 대해서 일부 기억만 가지고 있는 실존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구요. 그들의 노력이 개인에게는 그렇게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굉장히 안타까울 뿐입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스러져 간 주변인물도 그렇고 이 책을 쓴 계기중에 하나겠지만 꼭 기억해야 할 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중간에,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데 이제는 작가인 유시민과 국회의원 이해찬입니다. 특히,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해찬 의원에 대한 묘사는 압권입니다. 서울역 회군에 유시민이 관여했다는 부분도 흥미로웠구요. 


시절이 그래서 그런지,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비슷한 책과 영화가 봇물 터지듯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곧, 개봉하는 택시운전사도 그 중에 하나인데요. 마침, 영초언니를 본 참인데 비슷한 시기를 다룬 영화가 개봉해서 흥미로웠고 그 영화를 다룬 지대넓얕을 보면서 더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잘 안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보러 가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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